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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타2’ 중 '무량선옹'역의 성우 중국에서 가장 멋진 할아버지

中央广播电视总台朝鲜语  · 公众号  ·  · 2025-02-17 17:00

正文

24세에 연극 배우로 데뷔, 44세에 영어를 배우기 시작, 50세에 북경에서 무언극 연구, 65세에 승마를 배우고, 79세에 패션쇼 모델로 무대에 서며, 85세에는 비행기 조종을 배웠다……
그는 “중국에서 가장 멋진 할아버지”로 불린다. 과연 누구일가?

최근, 영화 가 흥행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2월 17일 8시 기준 루적 흥행수입이 119억원을 돌파하면서 중국영화 사상 새로운 리정표를 세우고 세계 박스오피스 순위 10위권에 진입하였다.

영화의 스토리와 특수효과가 관객들 속에서 널리 회자되고 있는 외 더빙 또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영화 속 “무량선옹” 역을 맡은 더빙 배우는 올해 89세의 동북출신 왕덕순 할아버지이다. 그는 캐릭터의 감정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목소리를 유연하게 변화시키면서 ‘무량선옹’을 생동감 있게 표현해 냈다.

사실 왕덕순의 인생 역시 한편의 영화같이 다채롭다.

01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 차례지는 법

1936년 왕덕순은 료녕성 심양시 한 농촌가정에서 태여났다. 14살 때 학교를 그만두고 뻐스 안내원으로 일하다 군수공장에서 전기 기술자로 근무했다.

당시 심양에는 로동자문화궁이 있었는데 랑독반, 연기반, 무용반 등 다양한 무료 강좌가 있었다. 왕덕순은 모든 강좌를 수강하며 열심히 배웠고 나중에는 모든 기술을 습득할 수 있게 되였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차례진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1959년 왕덕순이 일하던 군수공장에서 공연팀을 조직했고 그는 뛰여난 실력으로 팀에 합류했다. 그후 1년동안 그는 전국의 군수공장을 돌면서 공연을 펼쳤다.

1960년 심양으로 돌아온 왕덕순은 “심양군구 항쟁 연극단”의 간판을 보고 직접 찾아가 지원했다. 시험관이 노래, 춤, 연기를 요구하자 그는 자신있게 소화해냈고 결국 합격했다.

이렇게 왕덕순은 24세에 연극 배우로 데뷔했다. 그리고 이 길을 10년동안 걸었다.

“중국대백과전서”에 오른 왕덕순

“그땐 마이크도 없고 확성기도 없었어요. 오로지 순수한 목소리로 관객들에게 전달해야 했죠. 목소리가 멀리 퍼지도록 대사가 명확하게 들리도록, 이 기본공을 훈련하는 데만 3년이 걸렸습니다.”

이런 탄탄한 대사 실력은 후날 더빙과의 인연으로 이어졌다.

젊은 시절 왕덕순

2000년부터 왕덕순은 연예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그러다 , , <20세로 돌아가다>, 등 수십편의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점차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22년 여름, 의 더빙 감독 진호가 그를 찾아 ‘무량선옹’역의 더빙을 맡아줄 것을 제안했다.

“사실 더빙 전에는 어떤 역할인지 잘 몰랐어요. 록음실에 들어가서야 감독님이 설명해 주셨죠. 이 캐릭터는 처음엔 자상한 로인처럼 보이다가 나중에는 흉악한 모습으로 변한다고요.”

왕덕순은 감정 표현과 목소리 변화를 통해 복잡한 캐릭터인 무량선옹을 생생하게 구현해냈다.

영화가 개봉된 후 많은 관객들이 “캐릭터가 립체적이고 더빙이 살아있다” 고 극찬했으며 네티즌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캐릭터를 살렸다”는 칭찬댓글을 남겼다.

왕덕순은 “배우의 진보와 관객의 미적 감각이 점점 높아지고 있어요. 악역의 연기도 더욱 정교해져야 합니다. 가 이런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되여 기쁩니다. 애니메이션 영화는 수년에 걸쳐 완성되는 작품입니다. 만약 속편에 다시 초대를 받는다면 저는 여전히 최선을 다할 겁니다.”라고 말했다.

02

나의 운명은 나 스스로 결정한다

“내 운명은 내가 결정한다” 는 의 명대사이다. 왕덕순은 이 대사가 바로 자신을 말한다고 했다.

더빙으로 주목받은 후, 10년 전 그의 패션쇼 영상이 다시 화제로 떠올랐다.

2015년 “동북솜옷”을 컨셉으로 한 패션쇼에서 79세의 왕덕순은 상체를 드러내고 무대에 등장했다. 수염과 머리카락은 모두 희였어도 걸음걸이가 씩씩하고 단단한 근육을 자랑한 그는 “중국의 가장 멋진 할아버지”로 불렸다.

왕덕순의 “멋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50세, 무언극을 더 잘 소화하기 위해 그는 매일 변함없이 헬스장에서 2시간 운동과 1시간 수영을 견지했고 매주 한번씩 스케이트를 탔다.

60세, 살아있는 조각상을 연기하기 위해 근육단련에 도전했다.

2021년 85세의 그는 비행기 조종을 배우기로 결심하고 30일 동안 리론을 공부하고 50일 동안 실습을 거쳐 끝내 비행조종면허를 취득했다. 그는 국내 최고령 비행강습생 기록을 세웠다.

24세에 연기 인생을 시작해 80대에 이르러서야 대중의 주목을 받은 왕덕순은 대기만성형이다. 80대 로인으로서 그의 가장 큰 성공은 나이에 상관없이 젊은 마음과 도전 정신을 잃지 않았다는 점이다.

03

나는 나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 이렇게 정력이 넘치는가”는 질문에 왕덕순은 일기장에 적은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1996년 그는 60세 생일을 앞두고 일기장 첫 페이지에 “1996 선생”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나는 너의 도래를 바라지 않는다……그것은 나의 성숙을 의미하고 나의 로화를 예고한다. 하지만 나는 늙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왕덕순은 60세를 인생의 전환점으로 삼았다. 그는 이를 로년의 시작이 아니라 오히려 숙성의 과정으로 여겼다.

“많은 사람들이 60세가 되면 모든 일을 마쳤다고 생각하고 쉬려고 합니다. 하지만 나에겐 은퇴라는 개념이 없어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됩니다. 이는 나의 천성입니다. 나는 나이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내가 하고 싶다면 반드시 해낼 수 있습니다!”

왕덕순의 인생에는 “나이 불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은 종래로 그의 적이 아니였다. 그는 이미 나이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장악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후반생”이라고 여기는 나이에도 그는 계속해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자신을 뛰어넘기 위해 노력한다.

현재 왕덕순은 여전히 영화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렇게 열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묻자 그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내가 좋아하기 때문이에요. 좋아하는 일은 평생 해도 질리지 않아요. 나는 평생 연기를 했지만 지금도 질리지 않습니다.”



监制:金光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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